
역순 관람이 증명한 진리: "형만 한 아우는 없다"
트리플 피쳐 패키지의 순서 오기로 인해 2012년작 《타이탄의 분노》를 먼저 보고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은, 어쩌면 큰 행운이었을지도 모른다. 시리즈의 첫 편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면 고민의 흔적 없이 안일하게 찍어내는 속편들이 얼마나 처참한 결과를 낳는지, 두 영화의 비교를 통해 뼈저리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유치함의 극치를 달렸던 후속편과 비교하면, 인간과 신의 대결이라는 기본 모티브에 충실하며 크라켄과 메두사를 토벌하는 이 1편의 궤적은 훨씬 깔끔하고 매끄럽다. "분노편을 보고 이번 편을 보니 선녀 같았다"는 것이 내 소감인데, 형만 한 아우가 없다는 헐리우드 프랜차이즈의 잔혹한 진리를 다시 한번 증명해 준다.

눈뽕 CG와 다크 템플러: 인내심을 요구하는 시각 효과
물론 이 '선녀' 같은 1편도 흠결은 많다. 감독은 "내가 바로 제우스다!"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는지, 신들에게 과도한 광원 효과(CG)를 덕지덕지 발라놓았다. 후광이 넘치다 못해 명배우 리암 니슨의 얼굴 윤곽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과유불급의 연출은 시각적 피로감을 유발한다.
더욱 황당한 것은 사막에서 페르세우스 일행을 돕는 정령(Djinn)들의 비주얼이다. 신화적 크리처라기보다는 스타크래프트의 프로토스 종족, 특히 '다크 템플러'를 쏙 빼닮은 이들의 디자인은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세계관에 묘한 이질감을 던진다. 이 뜬금없는 퓨전 판타지를 넉넉한 마음으로 수용할 수 있느냐가 이 영화를 즐기는 첫 번째 관건이다.

동료애는 개나 줘버린 영웅의 '선택적 애도'
이 영화에서 가장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줘야 할 부분은 주인공 페르세우스의 인성이다. 그를 돕기 위해 험난한 여정에 동참하고, 목숨을 바쳐 희생한 전우들이 수두룩한데도 그는 이들의 죽음에 한 줄기 눈물조차 흘리지 않는다.
그의 온 신경은 오직 미모의 인도자 '이오(젬마 아터튼)'의 죽음과 부활에만 쏠려 있다. 전우애는 안중에도 없고 오직 자신의 '썸녀'에게만 반응하는 이 선택적 애도와 편협한 영웅주의는 관객의 어이를 상실하게 만든다. 주인공의 이런 이기적인(?) 행보마저 너그럽게 넘길 수 있어야 비로소 팝콘 무비로서의 가치를 음미할 수 있다.

신화 탐구욕, 그리고 갓 오브 워(God of War)를 향한 갈증
이 영화의 흥미로운 순기능 하나는, 수박 겉핥기식으로 알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탐구욕을 자극한다는 점이다. 영화에 묘사된 인간 세상보다 더한 '막장' 드라마,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이름이 다르다는 소소한 발견, 그리고 가계도를 외우듯 공부해야 하는 방대한 세계관은 그 자체로 매력적인 텍스트다.
하지만 헐리우드의 정제된 신화 영화들은 그 거칠고 잔혹한 신들의 세계를 표현하기엔 너무 얌전하다. 《타이탄의 분노》 리뷰에서도 언급했듯, 올림포스 신들의 위선과 폭력성을 자비 없이 찢어버리는 청소년 관람불가(R등급) 수준의 《갓 오브 워(God of War)》 실사 영화가 제발 제작되기를 다시 한번 간절히 기원해 본다. 페르세우스의 반쪽짜리 영웅담으로는 이 갈증을 채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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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 떡칠의 화려함과 다크 템플러의 어색한 난입, 그리고 크라켄의 위용만큼은 큰 화면으로 즐길 가치가 있다. 후속편보다는 확실히 나은 이 1편의 위용을 트리플 피쳐 박스셋으로 확인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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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결론: 흠결은 많아도 후속편보단 훌륭한 킬링타임
과한 눈뽕 CG, 스타크래프트 짝퉁 크리처, 그리고 동료의 죽음엔 무관심한 주인공까지. 깔 거리 투성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속편 《타이탄의 분노》에 비하면 훌륭하게 잘 짜인 블록버스터다. 넓은 아량으로 뇌를 비우고 본다면 충분히 즐거운 106분이다.
추천 관객: 《타이탄의 분노 (2012)》를 보고 깊은 내상을 입어 치유가 필요한 분들, 크라켄과 메두사가 나오는 정통 괴수 토벌전을 가볍게 즐기고 싶은 관객.
비추천 관객: 전우들의 숭고한 희생을 모른 척하는 이기적인 주인공을 용납할 수 없는 분들, 신들의 얼굴을 가리는 과도한 빛번짐 효과에 눈이 시린 관객.
전우의 죽음은 잊고 썸녀의 부활만 챙기는 얌체 영웅, 그럼에도 최악의 후속편 덕분에 '선녀'로 승격한 킬링타임의 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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