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꼬인 족보의 비극: 입양 보낸 불쌍한 내 자식들
마블 팬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그 찝찝한 기분, 바로 '저작권의 벽'이다. 헐크, 스파이더맨, 판타스틱 4... 한 지붕 아래 있어야 할 형제들이 소니나 유니버셜 같은 다른 집으로 팔려 가 겉도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입양 보낸 불쌍한 자식'을 보는 듯한 처연함이 느껴진다.
다행히 소니와 디즈니의 극적인 협상으로 우리 집 막내 스파이더맨이 《시빌 워》를 거쳐 드디어 '홈커밍'했다. 하지만 여전히 판권 문제는 복잡하게 얽혀 있고, 다른 히어로들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 상황은 마치 "엄마가 데리러 올 거야"라는 거짓말을 믿고 홀로 남겨진 아이의 고독함마저 느껴지게 한다. 이 '따로 국밥' 같은 느낌은 MCU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도 여전히 이질적인 잔상으로 남는다.

생계형 빌런의 탄생: 신(God) 대신 '소기업 사장'이 온 사연
이번 편의 악당 '벌처(에이드리언 톰스)'는 그동안 마블이 보여준 빌런들과는 결이 다르다. 우주 파괴범이나 신급 존재들 사이에서, 고작 1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소기업 사장이 메인 빌런이라니? 이 하향 평준화된 카리스마에 밋밋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 이면의 '현실적인 빡침'은 그 어떤 빌런보다 공포스럽다.
계약서 쓰고 투찰해서 따낸 국책 사업을 재벌(스타크 인더스트리)과 정부가 담합해서 하루아침에 뺏어갔다고 생각해 보라. 이건 악당이 되는 게 아니라 '복수하는 가장'이 되는 과정이다. 카리스마는 떨어질지언정 "내 새끼 먹여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폐기물을 훔쳐 무기를 만드는 그의 모습은 지독하게도 현실적이다. 그래서일까? 이 영화는 히어로물이라기보다 중소기업 사장의 처절한 잔혹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참새 떼의 재잘거림: 톰 홀랜드, 입 좀 다물어 줄래?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귀가 먹먹해진다. 톰 홀랜드의 피터 파커는 잠시도 쉬지 않는다. 이건 마치 해 질 녘 나무에 모여든 참새 떼의 시끄러운 수다와 같다. 한창 놀다가 잘 시간이 되어 낮에 겪었던 온갖 잡다한 일들을 친구들에게 쏟아내는 그 조잘거림.
내용이 산만한 건 아닌데, 주인공의 목소리 톤과 끊임없는 독백이 영화 전체를 참새 집단 서식지로 만들어버린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그게 거슬리지 않고 귀엽다. "아무도 도와주러 오지 않아"라는 절망적인 고독 속에서도 입을 쉬지 않으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소년의 모습은, 마블이 관객을 어떻게 '조련'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시끄러워 죽겠는데 정이 가는, 이 묘한 매력이 톰 홀랜드판 스파이더맨의 정체성이다.

결론: 조련당하는 관객, 그리고 메이 숙모의 비명
결국 마블은 마블이다. 형들이 안 도와주고 아빠가 모른 척해도, 혼자서 사고 치고 수습하며 성장하는 피터 파커를 보고 있으면 어느새 입꼬리가 올라가 있다. 너무 진지하지 않게, 하지만 성장통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는 마블의 강점은 이번에도 유효했다.
메이 숙모에게 정체를 들키며 끝나는 이 황당한 마무리는 다음 편인 《파 프롬 홈》을 보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든다. "왓 더...!"로 끝나는 그 비명이 관객의 비명과 겹치는 지점, 우리는 이미 마블의 조밀한 거미줄에 완벽하게 포획당했다.
최종 결론: 시끄러운 참새가 세상을 구하는 법
기존 스파이더맨들이 가졌던 '불행 서사'를 덜어내고 그 자리를 '수다'와 '현실성'으로 채웠다. 밋밋한 빌런과 고독한 영웅의 조합이 어색할지 몰라도, 톰 홀랜드의 피터 파커는 그 자체로 충분히 사랑스럽다.
추천 관객: 톰 홀랜드의 지치지 않는 에너지를 감당할 수 있는 관객, 생계형 빌런의 현실적인 분노에 공감하는 직장인들.
비추천 관객: 웅장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절대악과의 대결을 원하는 관객, 영화 내내 떠드는 주인공 때문에 귀가 아플 것 같은 예민한 분들.
입양아의 서러움을 수다로 승화시킨 '참새 영웅'의 고군분투, 마블의 조련술에 무릎을 꿇게 되는 유쾌한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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