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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그림자: 1등을 위해 존재하는 '나머지'들의 숙명

영화사에는 시대의 획을 그은 명작들이 존재한다. 그런 명작들은 후대의 영화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넘을 수 없는 높은 벽이 되어 비교의 잣대가 되곤 한다. 이 영화는 존 카펜터의 《괴물(1982)》과 궤를 같이하는 크리처물로 검색되지만, 그 완성도는 거장의 성취에 비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1등을 더 빛나게 만드는 조연 같은 영화라는 평가는 이 작품의 위치를 가장 정확하게 꿰뚫어 본 시각이다. 《괴물》이 선사했던 폐쇄 공포와 정체불명의 존재가 주는 서늘한 긴장감의 70% 정도만이라도 재현했다면 수작으로 남았겠지만, 절반 수준인 50%에 머문 지점은 장르 팬들에게 못내 안타까운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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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처의 독창성 vs 캐릭터의 평면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크리처의 디자인이다. 호저(산미치광이)의 가시 돋친 형상에 좀비의 기괴함, 그리고 일본식 각기 귀신을 연상시키는 비틀린 움직임을 결합한 크리처는 상당히 인상적이다. 숙주의 신체를 기괴하게 변형시키며 조각조각 움직이는 연출은 엉성한 캐릭터 설정을 희석해 줄 만큼 강렬하다.

 

하지만 뛰어난 외형에 비해 크리처의 등장 분량이 적다는 점은 치명적이다. 공포의 실체가 화면에 머무는 시간이 짧다 보니, 관객은 자연스럽게 캐릭터들의 행동에 집중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캐릭터의 허술함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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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 없는 지성인과 개연성 없는 영웅

영화의 몰입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는 캐릭터들의 답답한 행태다. 특히 생물학 박사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무능한 세스(파울로 코스탄조)의 모습은 관객에게 깊은 짜증을 유발한다. 저체온증이나 저혈압의 위험을 무릅쓰고 얼음물 속에 들어가는 아이디어를 대단한 발견인 양 행하는 지점은 '생물학 박사'라는 설정 자체가 각본을 위한 억지 장치였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캠핑에 익숙한 폴리가 더 기민하게 상황을 판단하는 모습에서 히어로의 역할을 찾게 된다는 점은 캐릭터 설계의 불균형을 드러낸다.

 

데니스(쉐어 위햄)라는 캐릭터 역시 아쉬움이 크다. 그가 왜 범죄자가 되어 도주 중인지에 대한 최소한의 배경 설명조차 없이, 극의 흐름에 따라 억지 영웅으로 소비되는 과정은 서사의 깊이를 얕게 만든다. '죽이고 싶을 정도의 답답함'은 단순히 개인적인 히스테리가 아니라,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지 못한 게으른 각본이 만들어낸 필연적인 결과물이다.

최종 결론: 3개월 뒤의 망각을 예고하는 평범함

《스플린터》는 훌륭한 크리처 디자인이라는 재료를 가지고도, 맛없는 캐릭터와 허술한 개연성이라는 조리법으로 평범한 결과물을 내놓았다. 1등을 돋보이게 하는 중하위권 영화라는 평가처럼, 이 영화는 우리에게 명작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역할에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추천 관객: 기괴한 형태의 크리처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분들, 80분 남짓의 짧은 러닝타임으로 가벼운 킬링타임을 원하는 관객.

비추천 관객: 캐릭터의 지성미와 치밀한 개연성을 중시하는 분들, 《괴물(1982)》급의 서스펜스를 기대하는 장르 마니아.

 


독창적인 괴물을 품고도 무능한 캐릭터와 게으른 각본이라는 늪에 빠져 명작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비운의 쩌리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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