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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사일런트 힐(Silent Hill, 2006)>의 물리매체에 수록된 부가영상을 보고 개인적으로 정리한 영화 산업의 비하인드 이야기이다. 재미로 올리는 글이니 가볍게 봤으면 좋겠다.

 

요즘 관객들에게 영화 제작이란 쾌적한 그린 스크린과 후반 CG 작업의 동의어일지 모른다. 하지만 90년대 초반은 달랐다. 특히 B급 장르 영화판은 말 그대로 '전쟁터'였다.

 

크리스토프 강스의 헐리우드 데뷔작 <네크로노미콘(Necronomicon)> 촬영장이 딱 그랬다. 1993년, 그는 미국 스태프들과 첫 호흡을 맞췄는데, 그곳은 화려한 헐리우드 스튜디오가 아닌 "B급 무비의 지옥"이었다.

영화 <네크로노미콘>의 기괴한 포스터

격납고의 아수라장: "이건 스튜디오가 아니다"

당시 제작 환경은 열악함을 넘어 처절했다. 촬영 장소는 방음 시설이 갖춰진 스튜디오가 아닌, 거대한 격납고(Hangar)였다.

 

가장 골 때리는 점은 두 개의 에피소드 촬영팀이 한 공간에서 동시에 돌아갔다는 것이다. 옆 팀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폭파 씬을 찍으면, 강스 팀은 손가락을 빨며 대기해야 했다. 소음이 멈출 때까지.

 

예산? 에피소드 당 고작 20~30만 달러(약 2~3억 원). 헐리우드 기준으로는 '껌값(Peanuts)'이다. 강스는 당시 상황을 "터무니없다(Preposterous)"고 회상한다. 모든 것이 부족했고, 모든 것을 몸으로 때워야 했던 'DIY(Do It Yourself)'의 현장이었다.

 

쌈마이 거장들의 회합: 유즈나와 이치세

하지만 이 난장판을 지휘한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제작자는 <리애니메이터(좀비오)>로 유명한 B급 호러의 제왕 브라이언 유즈나(Brian Yuzna), 그리고 훗날 <주온>, <링>으로 J-호러 붐을 일으킨 익스플로이테이션(Exploitation)의 대가 이치세 타카시게다.

브라이언 유즈나의 영화 바탈리언 3(1993)

강스는 이들의 지휘 아래, 극장 개봉이 아닌 '비디오 시장 직행(Straight-to-video)' 혁명의 여명기를 온몸으로 겪었다. B급 영화의 황혼기이자, 홈비디오 시장이 폭발하던 과도기의 에너지가 그 격납고 안에 응축되어 있었던 셈이다.

 

로저 코먼을 향한 헌사

도대체 왜 프랑스 감독이 이 고생을 사서 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그는 로저 코먼(Roger Corman)의 키즈였기 때문이다.

 

강스는 <네크로노미콘>을 로저 코먼이 60년대에 찍어낸 '에드거 앨런 포(Poe) 시리즈'에 대한 오마주로 여겼다. 돈은 없지만 아이디어와 열정만으로 괴물을 만들어내던 60년대의 방식이, 90년대 그 격납고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로저 코먼의 60년대 포(Poe) 시리즈 <어셔가의 몰락, 1960> 포스터

그에게 1993년의 경험은 단순한 고생담이 아니다. 영화광으로서 꿈꾸던 '진짜 영화판'의 신고식이자, 헐리우드 시스템에 적응하기 위한 가장 거칠고 확실한 훈련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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