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맥도나 감독이 연출하고 콜린 파렐, 브렌단 글리슨, 랄프 파인즈가 열연한 2008년작 《킬러들의 도시(원제: In Bruges)》는 피비린내 나는 범죄 액션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속은 죄책감과 구원, 그리고 인간 내면의 연약함을 날카롭고 유머러스하게 파고드는 걸작 블랙 코미디 드라마다. 잘못 지어진 듯한 국내 개봉명 뒤에 숨겨진 동화 같은 도시 브뤼헤에서의 시간은, 크레딧이 다 올라간 후에도 서글픈 웃음과 묵직한 도덕적 질문을 남기기에 [크레딧이 올라가도] 랙에 입주하기에 더없이 적합하다.

줄거리: 브뤼헤로 좌천된 두 킬러와 낯선 휴식
런던의 암살자 레이(콜린 파렐)는 첫 임무 도중 뜻하지 않은 실수로 무고한 어린아이를 죽이고 만다. 극심한 자책감에 빠진 레이를 데리고 선배 킬러 켄(브렌단 글리슨)은 보스 해리(랄프 파인즈)의 지시로 벨기에의 중세 고도시 브뤼헤로 피신한다. 고딕 양식의 건축물과 예술, 백조가 떠다니는 운하에 감탄하며 관광을 즐기는 켄과 달리, 레이는 지루함과 끔찍한 죄책감에 짓눌려 방황한다. 그러나 이 평화로운 도시에 머무는 동안, 보스 해리로부터 "아이를 죽인 레이를 처형하라"는 비정한 암살 지령이 켄에게 내려온다.

결말: 종탑 위의 추락, 그리고 살고 싶어진 지옥 (※ 스포일러 주의)
차마 친동생이자 아들 같은 레이를 쏠 수 없었던 켄은 오히려 자살을 시도하려던 레이를 구하고 그를 도망치게 한다. 분노한 해리가 직접 브뤼헤로 날아와 켄과 대치하고, 치명상을 입은 켄은 레이에게 위험을 알리기 위해 높은 종탑 위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목숨을 바친다.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해리와 레이의 추격전 끝에, 영화 촬영장에서 교복 의상을 입고 있던 왜소증 배우가 해리의 총탄에 맞아 쓰러진다. 그를 어린아이로 오인한 해리는 "아이를 죽인 자는 죽어야 한다"는 자신의 엄격한 신조에 따라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총상을 입고 구급차에 실려 가며, 레이는 죽어가는 순간 비로소 자신이 그토록 혐오했던 브뤼헤라는 연옥 속에서 '진짜 살고 싶다'는 간절한 열망을 품게 되며 영화는 아련한 여운을 남긴다.

킬러의 가면을 벗어던진 순수한 영혼들이 빚어낸 역설의 블랙 코미디
제목만 보면 전형적인 총격 액션물 같지만, 실상은 전혀 킬러답지 않은 두 남자의 여리고 순수한 내면을 들여다보는 아주 낯설고 매혹적인 영화다. 자연과 문화, 고전 회화와 중세 예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킬러라니. 어쩌면 애초에 맞지 않는 킬러라는 가면에 억지로 자신을 꿰맞추며 살아가던 이들이, 브뤼헤라는 정적인 공간에 멈춰 서서야 비로소 가장 솔직하고 진정한 자신의 본모습을 꺼내 보인 것일지도 모른다.
실수로 지옥 같은 죄책감에 갇힌 레이와, 퉁명스럽게 티격태격하면서도 끝내 그를 위해 목숨까지 던진 켄의 애틋한 유대는 "도대체 세상에 무슨 이런 킬러들이 다 있나" 싶은 헛웃음과 함께 깊은 인간적 페이소스를 선사한다. 우스꽝스러운 대사와 황당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의 구원과 도덕을 이토록 서늘하고 아름답게 직조해 냈다는 점이야말로, 이 영화가 시대를 초월한 블랙 코미디의 명작으로 꼽히는 이유다.

동화 같은 도시 브뤼헤에서 벗겨진 킬러의 가면. 핏빛 죄책감 속에서 건져 올린 순수와 구원의 블랙 코미디.
● 영화 기록가의 덧붙이는 로그
웨이브(Wavve) 스트리밍을 통해 디지털로 감상했다. 중세 고딕 건축물의 스산하면서도 아름다운 미장센과 카터 버웰의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이 OTT 스트리밍 환경에서도 특유의 차분한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달해 주었다. 비록 실물 블루레이 패키지 개봉기는 아니지만, 서글픈 유머와 묵직한 죄책감의 무게를 다시금 곱씹게 만든 명작으로서 수장고의 [크레딧이 올라가도] 랙에 정갈하게 아카이빙한다. 오늘 밤의 영사를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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