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길고 길었던 <로스트> 시즌 1의 대장정이 막을 내렸습니다. 블루레이 화질로 다시 들여다본 오세아닉 815편 생존자들의 첫 번째 생존기는 그야말로 경이로우면서도, 동시에 시청자의 인내심을 쥐락펴락하는 애증의 시간이었죠.
특히 생존의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하는 찰나의 순간마다 기가 막히게 흐름을 끊고 들어오는 '플래시백(과거 회상)'의 남발은 때로는 짜증을 유발하는 진입 장벽이기도 했습니다. "아니, 당장 괴물이 쫓아오는데 왜 갑자기 옛날 첫사랑 타령이야!"라며 그냥 종료 버튼을 누르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 지독한 플래시백이야말로 떡밥의 늪인 <로스트>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캐릭터 빌드업 장치였음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시즌 1을 마무리하며, 우리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던 그 수많은 떡밥들을 속 시원하게 분류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떡밥 정산소: 속 시원하게 풀린 진실들 (회수율 100%)
시즌 1이 떡밥만 던지고 끝난 것은 아닙니다. 초반부를 지배했던 굵직한 미스터리 중 일부는 꽤 명확한 해답을 내놓았습니다.
- 16년 전 프랑스어 구조 무전의 정체: 파일럿 에피소드에서 수신되었던 "모두 죽었어요"라는 절망적인 무전. 그 발신자는 16년 전 난파된 프랑스 과학 탐사팀의 유일한 생존자 '다니엘 루소'로 밝혀졌습니다.
- 존 로크의 기적: 추락 전, 로크는 휠체어에 의지해야만 하는 하반신 마비 환자였습니다. 섬에 추락한 직후 기적적으로 두 다리의 감각을 되찾고 걷게 되었다는 사실이 플래시백을 통해 완벽히 회수되며, 섬이 가진 치유의 능력(혹은 초자연적 힘)을 입증했습니다.
- 우리 안의 이방인: 캠프에 조용히 섞여 있던 '이단 롬'은 비행기 탑승객이 아니었습니다. 섬에 원래 살고 있던 정체불명의 원주민(아더스)이 존재한다는 끔찍한 진실이 그의 정체와 함께 수면 위로 드러났습니다.
떡밥 정산소: 여전히 남겨진 거대한 미스터리 (시즌 2를 위한 청구서)
해결된 것보다 새롭게 던져진 질문들이 훨씬 더 묵직합니다. 피날레를 장식하며 시청자의 멘탈을 붕괴시킨 핵심 미스터리들입니다.
- 해치(Hatch) 아래의 심연: 다이너마이트로 날려버린 벙커의 뚜껑. 끝없이 이어진 수직 통로 아래에는 도대체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누가, 왜, 언제 이 정글 한가운데 거대한 철제 벙커를 만들었을까요?
- 아더스(The Others)의 진짜 목적: 뗏목을 습격해 월트를 납치해 간 수염 기른 남자와 아더스 일행. 이들은 왜 생존자들의 물자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아이들(월트, 애런)'에게만 집착하는 것일까요?
- 저주의 숫자 [4, 8, 15, 16, 23, 42]: 헐리를 돈방석에 앉혔지만 동시에 파멸로 이끌었던 불행의 숫자. 이 번호들이 왜 정글 속 해치의 문에 떡하니 새겨져 있는 것일까요? 우연이라기엔 너무나도 섬뜩한 이 숫자들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요?
- 검은 연기(Black Smoke)의 실체: 나무를 뽑아버리고 사람을 찢어 죽이는 숲속의 괴물. 마침내 거대한 검은 연기 기둥이라는 외형을 드러내긴 했지만, 기계음을 내는 이 괴물이 초자연적인 악령인지 첨단 과학의 산물인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시즌 1, 내 맘대로 꼽은 최고의 씬 스틸러
- 최고의 반전 캐릭터: 존 로크 (자신이 휠체어 신세였음이 폭로되는 과거 플래시백과, 추락 직후 해변에서 기적처럼 두 발로 일어나는 현재 씬이 교차되는 4화의 엔딩은 단연 압권이었습니다. )
- 최고의 고구마 & 사이다: 소이어 (초반엔 그저 이기적인 사기꾼인 줄 알았으나, 점차 상처받은 내면을 드러내며 애증의 캐릭터로 자리 잡았습니다.)
- 최악의 극한 직업: 헐리 (숫자의 저주에 시달리고, 피 보는 것을 싫어하는데 맨날 다친 사람을 옮겨야 했고, 급기야 다이너마이트 운반책까지 맡았던 짠내 나는 인생.)
에디터의 코멘트
가끔은 툭하면 과거로 돌아가는 플래시백에 피로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결국 그 조각들이 모여 캐릭터들의 입체적인 심리를 완성해 냈습니다. 시즌 1이 섬이라는 미지의 공간에 대한 '생존'과 '탐색'의 과정이었다면, 열려버린 해치와 함께 시작될 시즌 2는 본격적인 '대립'과 '심리전'의 장이 될 것입니다.
과연 잭의 이성과 로크의 맹신 중 무엇이 생존자들을 이끌게 될까요? 떡밥의 늪은 이제 막 무릎까지 차올랐을 뿐입니다. 곧이어 시작될 시즌 2 리뷰에서도 이 지독하고도 매력적인 생존기에 계속 함께해 주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