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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용, 끝은 흐지부지한 뱀 꼬리

영화의 시작은 화려하고 요란하다. 1970년대 격동의 대한민국에서 한국의 에스코바르를 꿈꾸던 이두삼(이황순 실존인물)의 초고속 성장기는 분명 흥미롭다. 하지만 그 요란함이 끝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결국 허무하고 맥 빠진 뱀 꼬리로 끝나는 점이 이 영화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다.

 

감독은 거대한 마약 조직의 탄생과 몰락을 다루려 했지만, 서사는 마치 약에 취한 듯 어수선하게 흐른다. 이두삼의 성공과 몰락이 시대적 격변(10.26, 12.12 사태)과 엮였다는 건 흥미로운 관찰이지만, 영화는 이를 깊이 있게 파고들기보다는 그저 '운이 없어서 망했다'는 느낌만 강하게 남긴다. 송강호의 필모그래피에서 '꼭 봐야 할 영화'라고는 절대 추천할 수 없다. 오로지 '송강호 연기의 극한'만을 원한다면 모를까.

조정석, 비중은 킹인데 존재감은 버금가지 못하다

검사 김인구 역으로 조정석이 출연한다. 이두삼과 버금가는 비중을 가질 법한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김인구 검사는 어수선하고 이도 저도 아닌 흐지부지한 캐릭터로 전락한다.

 

마약왕을 쫓는 정의로운 검사라는 캐릭터는 서사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중요한 축이 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그는 이두삼의 거대한 광기에 압도당하거나, 혹은 아예 서사에서 겉도는 방관자처럼 느껴진다. 조정석 배우의 연기력은 좋았지만, 캐릭터 자체의 존재감이 맥빠진 탄산수처럼 느껴져 실망스러웠다. 두 거장 배우를 데려다 놓고 메인 축이 이렇게 흔들린다는 것은 감독의 연출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증거다.

 

송강호의 '파격과 실험'은 좋았지만...

네가 박쥐에서 느꼈던 '파격과 실험'에서 오는 실망감과 비슷한 종류의 실망감이 마약왕에도 깔려 있다. 송강호 배우는 이두삼이라는 인물의 광기와 몰락을 극한으로 끌어올린다. 특히 마약에 찌들어 망가져 가는 후반부의 연기는 연기력 자체만 놓고 보면 경이롭다.

하지만 배우의 '파격적인 연기'와 '훌륭한 영화'는 별개의 문제다. 이 영화는 '송강호의 원맨쇼' 이상이 되지 못한다. 거대한 서사와 시대적 배경은 이두삼이라는 인물의 광기를 담아내는 배경막 역할만 할 뿐, 그 이상으로 뻗어나가지 못한다. 배우의 연기를 감상하는 것 외에, 이 영화에서 관객이 얻을 수 있는 재미나 통찰은 극히 적다.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굳이 찾아볼 필요는 없다.

여담: 한국의 에스코바르, 땅 크기가 문제였을까?

실존 인물인 이황순이 체포될 때 총을 쏘며 저항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만약 한국이 콜롬비아처럼 땅 크기가 크고 총기 소지가 합법이었다면, 그가 정말 한국의 에스코바르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네 생각에 동의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런 흥미로운 가정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 대신, 이두삼의 몰락 과정을 그저 광인(狂人)의 자멸로만 소비한다. 관공서의 부패와 시대의 썩음은 보여줬지만, 결국 영화는 주인공의 연기에 기대어 '어차피 저렇게 될 운명'이라는 허무한 결말만 짓고 끝을 맺는다. 뱀 꼬리 같은 엔딩이다.

 

결론: 송강호의 연기력을 감상하는 것 외에는 딱히 추천할 이유가 없는, 초반의 기대감을 배신하는 허무한 영화.

 

추천 관객: '연기 교본'이 필요해서 송강호 배우의 연기만 슬로우 모션으로 돌려 볼 사람.

 


송강호의 연기 교본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허무함 끝판왕 139분짜리 '배우 낭비'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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