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기

[한국영화 회고] 아가씨 추천 – 괴상하지만 아름다운, 여자들의 우정과 해방

디스크러버 2025. 6. 1. 23:47

· 뭔가 혼란스럽지만, 영화는 정말 재미있다.
· 델마와 루이스가 떠오르는, 여성 중심의 우정과 탈출.
· 복수 시리즈 이후 박찬욱 감독의 변화가 느껴진다.
· 권선징악의 쾌감과 미적 감수성 모두 살아 있는 작품.

 


“뭔가 혼란스럽긴 하지만, 영화는 재미있다.” 『아가씨』를 본 뒤 가장 먼저 떠올랐던 말이다. 출연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 그리고 남자 중심 서사에서 벗어난 여성 간의 우정을 이렇게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처음엔 『델마와 루이스』가 떠올랐다. 약자이자 소수자일 수 있는 여성들이 함께 탈출하는 그 영화처럼, 『아가씨』 역시 통쾌하고 애잔한 여정을 담고 있다.

 

박찬욱 감독이 『아가씨』를 들고 나온다는 소식은 2016년 당시 꽤나 큰 기대를 안겼다. 원작은 사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레즈비언 서사. 이를 일제강점기로 옮겨온 박찬욱의 각색은 참신했고, 믿고 보는 감독에 기대감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시 여러 사정으로 영화를 보지 못했고, 이렇게 시간이 흘러서야 처음 감상하게 됐다.

 

이야기는 이렇다. 일본 국적을 가진 아가씨, 그녀의 재산을 노리는 사기꾼 백작, 그리고 그와 손잡고 들어간 하녀 숙희. 서로 다른 목적과 욕망을 가진 인물들이 얽히며, 탐욕과 계략의 장이 펼쳐진다. 하지만 결국 살아남는 건 두 여성. 반면 얍삽하고 탐욕스러운 두 남자는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해피엔딩이라는 점에서 『델마와 루이스』와는 대비되는 쾌감을 준다. 이 점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사실 사전 정보 없이 본 터라 중간부터 흐르는 묘한 분위기에 놀랐다. “설마?” 하다가 정말이었고, 그게 첫 번째 충격이었다. 원작이 레즈비언 서사라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됐기에, 처음엔 단순한 우정 또는 ‘브로맨스’쯤으로 착각했던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익숙하지 않은 걸 받아들이는 게 어렵다는 걸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다.

 

 

두 번째 충격은, 오랜만에 본 박찬욱 감독의 작품이 ‘복수 시리즈’의 연장선상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감독도 진화하는 법이고, 『아가씨』는 분명히 다른 방향의 작품이다. 전작들과는 다른 결의 미적 감각과 서사를 담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올드보이』『친절한 금자씨』의 잔상이 강렬하게 남아 있어서, 이 작품의 ‘부드러움’에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정말 재미있었다. 반전도 있고, 간간이 터지는 유머도 있다.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았고, 결말도 단순한 권선징악이라 오히려 더 통쾌했다. 나름대로의 별점은 7점. 감상 후 만족스러운 잔상이 길게 남았다.

 

블루레이 타이틀로 소장하려 했으나 국내 정발은 이미 품절. 결국 아마존에서 해외판을 구입했다. 2016년작인데, 어쩐지 일본어 대사가 꽤 많이 들어간 영화들이 유독 많았던 해였다. 『곡성』도 그렇고. 영어 자막으로 봤지만, 이 영화는 꽤 어려웠다. 문화적 뉘앙스를 온전히 따라가기엔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끝으로 배우들의 열연과 정교한 소품, 그리고 화면의 미적 감수성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


“혼란과 감탄, 그리고 해방. 이것은 여자들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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