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토피아 영화 회고] 소년과 개 추천 – 황폐한 세계에 남겨진 가장 불쾌한 공존
· 하란 엘리슨 원작의 음울한 감성과 미래 비전
· 충격적인 여성 캐릭터 소모와 희화화
· 기괴하고 불쾌한 블랙코미디 설정의 파장
· 리메이크와 후속작 논란으로 남은 뒷이야기
하란 엘리슨(Harlan Ellison)의 단편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말 그대로 1970년대 디스토피아 SF 중에서도 가장 문제적이고 기이한 작품으로 꼽힌다. 황폐한 핵전쟁 이후의 미래, 굶주림과 폭력, 윤리의 붕괴가 일상이 된 세상에서 소년과 개라는 조합은 어쩐지 따뜻한 느낌을 줄 법도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기대를 거칠게 짓밟는다.
소년 '빅'과 텔레파시 능력이 있는 개 '블러드'는 일종의 생존 콤비다. 그러나 이 관계의 기저에는 공존이라기보다는 착취와 이용이 존재한다. 개는 여성을 탐지하는 데 능하고, 소년은 그 정보를 바탕으로 강간과 약탈을 일삼는다. 이 끔찍한 설정을 블랙코미디로 소비하는 방식은, 아무리 1970년대 영화라고 해도 지금 기준에서는 거의 범죄적인 수준의 문제의식 부재로 읽힌다.
더 충격적인 건 여성 캐릭터의 묘사 방식이다. 극중 등장하는 여성은 대개 '성적 도구'로 그려지고, 특히 하단에서 전개되는 '지하 사회' 씬은 더 불편하다. 마치 '디스토피아의 어릿광대'처럼 묘사되는 이 지하 문명은 사회 풍자를 가장한 카니발적 공간이지만, 그 속에서 여성은 그저 번식 수단 혹은 전시물일 뿐이다. 여성 인물 '퀄라'의 죽음이 개 한 마리를 살리기 위한 거래처럼 묘사되는 클라이맥스는 이 영화가 여성에 대해 얼마나 폭력적인 상상력을 드러내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여전히 회자되는 이유는, 하란 엘리슨 특유의 도발적 상상력과 그로 인한 문제작으로서의 위상 때문일 것이다. 엘리슨은 이 영화의 결말을 싫어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실제로 감독인 L.Q. 존스가 원작을 각색하며 결말을 비틀었고, 이 때문에 엘리슨과의 갈등이 있었다.
놀랍게도 이 영화는 후속작이나 리메이크 논의가 종종 언급되었는데, 하란 엘리슨 생전에는 본인이 강하게 반대했다. "이미 충분히 망쳐놨다"는 식의 발언도 있었고, 그는 원작의 톤을 망가뜨린 영화판의 방향성을 깊이 못마땅해했다.
이 영화에 대해 말할 때 '문제적이다'라는 말은 결코 수식어가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의 시각으로 재평가하며, 왜 이 영화가 불쾌한 동시에 의미 있는 비판의 대상이 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SF라기보다 디스토피아 풍자극에 가까운 이 작품은 지금 보면 더욱 불쾌하고 논쟁적인 영화다. 추천이라기보다 ‘경계해야 할 영화’로서 언급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난 이런게 마음에 들었지만)
“무너진 세상에서 인간다움도 같이 무너진다면, 그 끝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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