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심리 스릴러 추천] 큐어 – 불안을 감염시키는 최면, 그러나 설득력은 아쉬웠다
· 봉준호 감독이 '가장 위대한 영화 중 하나'로 꼽은 작품.
· 일련의 살인과 최면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공포를 전염시키는 일본 스릴러.
· 불안의 정체를 실체로 규정하지 않고, 관객의 감정 속으로 파고든다.
· 그러나 그 감정에 충분히 물들지 못하면, 낯설고 어렵기만 할 수도.
이 영화는 상당한 기대를 갖고 본 작품이다. 우리나라나 서구권 영화에 비해 일본 영화를 많이 접하지 못한 상황에서, 『큐어』는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봉준호 감독이 “가장 위대한 영화 중 하나”라 언급할 정도라니, 도파민이 치솟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막상 보고 나니 이 영화가 그렇게까지 극찬을 받을 이유를 솔직히 잘 모르겠다는 느낌도 들었다. 사운드 디자인을 통한 불안감 유도라든지, 일상적인 음향으로 관객을 조이는 연출력이 인상 깊다지만, 스피커 볼륨을 작게 해두고 봐서 그런가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이런 명성을 가진 영화를 별 감흥 없이 봤다는 사실에 나 스스로 억울함마저 들었다.
영화는 동일한 수법의 살인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는 상황을 보여준다. 가슴과 목 사이에 큰 X 자 자상이 남은 채 피해자들이 살해되고, 범인은 모두 현장에서 붙잡힌다. 그러나 피해자들 간의 공통점도 없고, 가해자들 간의 접점도 전혀 없다. 이 기묘한 연쇄 사건을 담당한 형사 타카베는 점점 내적으로 무너져간다. 그러던 중, 마미야라는 인물을 만나게 되면서 서사가 본격화된다.
마미야는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으며, 피의자들과 접촉한 유일한 인물이다. 그의 존재는 살인 사건의 중심에 있으나, 마치 모든 것을 잊은 듯 어리둥절한 태도를 취한다. 그는 정말 기억상실을 앓는 것일까? 아니면 교묘한 연기일까? 그가 직접 손에 피를 묻히지 않더라도, 사람들에게 살인을 유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면 이건 단순한 범죄의 문제를 넘어서게 된다.
문제는 이 영화가 이 모든 핵심 설정에 대해 거의 설명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미야가 최면을 통해 살인을 유도하는 이유도 명확하지 않다. 개인적 쾌락인지, 신념인지, 아니면 그저 혼돈의 화신인 건지... 그 어떤 실체도 밝혀지지 않는다. 게다가 결말에서 타카베가 마미야를 죽인 뒤 식당에서 평온하게 식사를 하고, 그 직후 종업원이 칼을 드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는 건 더 큰 혼란을 안긴다. 타카베가 마미야에게 감염된 걸까? 아니면 또 다른 마미야들이 있다는 암시일까?(부가영상 중에 프로듀서의 대화에서 타가베가 벌인 짓으로 밝혀진다. 해당 장면을 몇 번이나 돌려봤는데 손짓, 도구 장면이 없어 확신이 없었는데 예상이 맞았네.. 뭐 결말 부분 마미야를 살해한 타가베가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설교를 듣는 장면에서 그럴거 같은데 의심은 했지만)
마미야의 존재가 ‘실체 있는 악’인지, ‘사회적 병리현상의 상징’인지 모호하고, 결말의 메시지는 ‘감염’이라는 주제를 반복하며 불안을 증식시킬 뿐이다. 그는 교사범일 수도 있고, 그저 관찰자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현대 사회가 만들어낸 정신적 바이러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모호함이 관객에 따라 몰입을 극대화시키기도 하고, 반대로 소외감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래도 하나 확실히 인상 깊었던 건 영화의 분위기다. 시종일관 기이한 감정선, 허름한 병원들이 주는 시각적 불편함, 무표정한 인물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연출은 일본 영화 특유의 불안하고 음울한 감성을 극대화시킨다. 이야기 구조에는 아쉬움이 있지만, 분위기 하나만큼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결국 『큐어』는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 영화다. 답을 원하는 관객에겐 불친절하지만, 의문을 안고 끝나는 이 불확실성 자체가 이 작품의 존재 이유인지도 모른다.
참고로 원래 대본의 제목은 큐어가 아닌 "전도사"였다.
본 감상은 직접 소장 중인 『큐어 (1997)』 플레인아카이브 한정판 4K UHD 국내 정발판으로 관람한 결과입니다. 해당 물리매체의 패키지 디자인, 구성, 발매 정보 등이 궁금하다면 아래 개봉기 글을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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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설명되지 않기에, 더 깊게 각인되는 불안의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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